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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하나, 국내사설쓰기

[08/02] “못 본 척하라는 못난 조언, 동료에게 건네야 하는 현실”

지난달 29일 경복궁역 근처에서 열린 교사 집회. 중앙일보 펌.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구 서초2동 서이초등학교 앞. 이 학교 1학년 담임교사(23)가 지난달 18일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2주 가까이 지났지만 그를 추모하는 발길은 여전히 이어졌다. 해 지고 오후 9시쯤 됐는데도 학교 정문 안쪽에 마련된 추모공간을 찾아 헌화하고 묵념하는 이들이 있었다. 전국초등교사노조와 전국 교사의 자발적 모임인 '전국교사일동'이 조문용 꽃을 마련해 놓고 있었다. 흰 국화 다발과 추도의 글을 적은 메모지가 쌓이고 또 쌓였다. 절절하고 애달픈 마음과 마음이 연한 색깔을 메모지에 담겼다.

 

"어쩌면 저는 당신입니다. 그래서 더 애통하고 슬픕니다."

 

"선생님이 너무 힘들었을 것 같아, 계속 눈가에 눈물이 고이고 흐르네요. 저도 선생님처럼 그런 일을 매우, 아주 많이 겪었습니다."

 

"선생님, 그곳에선 아무 걱정 없이 편안하게만 쉬셨으면 좋겠는데... 교사 특성상 그게 잘 안되시죠? 그럼 보고 계시리라 믿어요. 이렇게나 많은 물결들이 일렁이고 있다는 거."

 

사건이 터지자마자 서이초에 달려간 한 젊은 교사는 '전국교사일동'의 SNS채널에 당시 분위기를 이렇게 표현했다. "하얀 국화를 들고, 쪽지를 남기며 하염없이 우는 선생님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쪽지들 속에서 전국 선생님들의 슬픔과 절규를 봤다."

 

학교 주변은 전국에서 보낸 근조 화환이 두 겹 세 겹으로 에워쌌다. 학교 바로 옆 아파트 사이의 담벼락을 제외한 나머지 세 개의 담벼락은 모두 근조 화환이 자리를 차지했다. 화환 대부분은 일찌감치 보낸 듯 이미 시들었지만 워낙 숫자가 많아 마치 흰색 옷의 군중이 스크럼을 짜고 학교를 포위한 것 같았다. 리본에 적힌 단문의 메시지는 한마디로 '지못미',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내용이 많았다. 일부 눈길 끄는 강렬한 메시지도 있었다.

 

“24시간 콜센터, 보모·돌봄·간병까지”

 

"썩을 사회, 죽은 학교, 미안합니다" "무너진 교권 무너진 공교육" "공교육의 붕괴는 곧 국가의 붕괴다" "어쩌면 나였을..." "몇 명이 죽어야 바뀌나요?" "24시간 콜센터, 보모, 돌봄, 간병, 경찰업무까지? 해봐라, 버틸 사람 누군지"

 

조화 대부분 교사들이 보냈고 가끔 학부모가 보낸 것도 있었다. '민원 공공분야의 한 직원'은 "선생님들 참담하시죠, 위로 전합니다"라며 동병상련의 마음을 나눴다. 눈치 없이 추모 자제령을 내린 학교가 있었던 걸까. '보내지 말래서 보내는 1인'은 "선생님은 잘못이 없습니다"라고 쓴 조화를 기어코 보냈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의 각성을 촉구하는 조화도 보였다. '1학년 8반 학생 일동'은 "작년 담임선생님이라 행복했어요"라고 적었다. 서이초 앞을 오가는 서초 11 마을버스 임직원 일동의 조화도 있었다.

 

이틀 전인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정부서울청사 인근. 광화문 서쪽부터 지하철 경복궁역을 거쳐 사직공원에 이르는 사직로와 경복궁 옆 효자로 절반을 검은 옷을 입은 교사 시위대가 차지했다. 현장에 있는 경찰 간부는 "집회 신고는 1만 명이었는데 2만2000명 정도 참석했다"라고 했다. 집회에서 마이크를 잡은 한 교사는 "손팻말 3만 2000장을 준비했는데 모두 동났다"라고 했다. 집회 측은 대략 4만 명이 참석했다고 봤다. 폭염을 뚫고, 뜨거운 햇살은 고스란히 흡수하는 검은 옷까지 입고, 녹아내릴 것 같은 아스팔트 위에서 교사들은 얌전히 앉아 흐르는 땀을 닦으며 구호를 외쳤다.

 

"아동학대처벌법 개정하라" "교사의 교육권 보장하라" "정상적인 교육 환경 조성하라"

 

교사의 교육권 보장과 안전한 교육환경 조성을 요구한 손팻말도 위 구호와 같은 맥락이다. 사회자가 "아주 당연한 말이지만 정말 외치고 싶은 구호"라며 이런 구호도 선창했다.

 

"우리는 가르치고 싶다"

 

"학생들은 배우고 싶다"

 

이날 교사들의 집회는 광화문과 시청 주변에서 주말이면 흔히 볼 수 있는 전문시위꾼의 집회와는 많이 달랐다. 요즘 시위 문화와 다르게 4가지가 없는 '4 무' 집회였다.

 

우선 주최자가 따로 없었다. 연단에 걸린 플래카드엔 아무런 단체이름 없이 "교실, 교육을 위한 공간으로/교육, 모두를 위한 희망으로"라고만 적혀있었다. SNS에 사전에 올라온 집회 이름은 '7.29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집회'였고 자발적으로 모인 '전국교사일동'이 준비했다.

 

시위가 벌어지면 으레 볼 수 있는 단체명이 적힌 색색의 깃발도 없었다. 조직적으로 동원되지 않은, 자발적 집회여서 그랬을 것이다.

 

귀청을 찢는 스피커 소음도 없었다. 스피커는 있었지만 연단의 말소리가 들리는 정도였고 크지는 않았다. 집회 소음기준을 무시하기 일쑤인 여느 집회와는 달랐다. 특히 보수, 진보 집회가 시내 가까운 장소에서 동시에 열릴 때 양쪽이 경쟁적으로 볼륨을 높이곤 한다. 귀를 막고 지나가야 할 정도로 견디기 힘들다.

 

가도행진이 없었다. 집회는 예고된 대로 정확히 2시간 만에 끝났다. 연단에서 "선생님들의 집회는 뭐가 달라도 달라야겠지요?"라며 뒷정리를 요청했고, 남은 교사들은 쓰레기를 줍고 페트병을 따로 모았다.

 

특정단체가 주관하지 않았고 깃발도, 스피커 소음도, 가두행진도 없었지만 4만 명이 내뿜는 에너지는 대단했다. 구호 후렴구는 세 번씩 외쳐달라고 고지해야 할 정도로 교사들은 시위에 익숙하지 않았다. 서툴러서 오히려 울림이 있었고 진정성이 느껴졌다. 이들이 발표한 7.29 성명서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오래 일하려면 혼내지 마세요. 못 본 척하세요. 꼭 해야 하는 것 아니면 굳이 하지 마세요.' 동료에게 이런 못난 조언을 건네는 우리의 상황이 슬픕니다. 열정적인 동료 선생님을 보면 응원보다 염려가 앞서는 현실이 슬픕니다. 교육으로 선 우리 대한민국입니다. 하지만 그 뿌리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죽어가는 공교육, 이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이 받고 있습니다. 본 집회는 특정인이나 특정 집단을 비난하기 위한 집회가 아닙니다. 가르치고 싶은 교사, 배우고 싶은 학생들에게 '정상적인 교육 환경을 제공하기 위함'입니다. 오랫동안 앓아온 우리 교육현장을 건강하게 살리기 위해 모였습니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아동학대범으로 몰렸다가 무죄를 선고받은 자신의 사연을 전했다. "싸우는 학생을 몸으로 막으면 신체적 학대, 큰소리를 치면 정서적 학대, 세워놓거나 훈계하는 것조차 아동학대로 판정받는 현실 때문에 살얼음 위를 걷는 심정으로 아이들 앞에 섰다. 아동학대처벌법이 교사의 손발을 묶고 교사를 협박하는 데 악용되지 못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

 

서경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