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킬러 문항' (초고난도 문제) 배제 방침 이후 치러진 첫 대학수학능력시험 모의평가에서 킬러 문항은 나오지 않았다. 그로 인해 우려했던 변별력 확보에도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교육부의 설명과 EBS의 분석뿐 아니라 입시학원에서도 같은 평가를 했다. 즉 공교육을 잘 따라가고 주어진 지문과 선택지를 꼼꼼하게 읽으면 풀 수 있는 문제였다는 것이다. 다행이다. 이렇게 쉽게 가능한 거였으면 왜 진작 하지 않았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그동안 수능은 공교육 과정에서 배우지 않은 초고난도 문제 몇 개로 상위권 학생들의 등급이 좌우됐다. 킬러 문항을 맞추느냐에 따라갈 수 있는 대학이 결정됐다. 부모는 등골이 휘면서도 자녀를 학원에 보내고, 아이들은 학교 수업 이외의 학업 부담과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다. 학원에 킬러 문항을 팔고 고액을 챙긴 일선 교사들도 수두룩했다. 누구보다 공교육을 지켜야 할 교사들이 앞장서 학생을 학원으로 내몬 셈인데 이 정도로 공교육이 망가져 있다. 지난해 초·중·고등학교 사교육비 지출은 역대 최대인 26조원에 달했다. 국가 교육 예산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수치다. 청소년 자녀가 있는 가정에서 사교육에 쓴 비용은 가족 전체 식비나 주거비보다 많았다. 사교육비 부담은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주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모의평가는 공교육을 충실하게 받은 학생이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인식을 어느 정도 심어줬다. 하지만 단번에 공교육이 신뢰를 얻을 수는 없다. 정부의 지속적인 시그널과 행동이 필요하다. 일단 올해 수능에서도 확실하게 킬러 문항을 배제하고 변별력도 확보해야 한다. EBS 교재와 학교 수업만으로도 수능 대비가 가능하다는 인식이 생겨야 비로소 사교육 의존이 줄어들 것이다. 정부는 킬러 문항 배제의 궁극적 목표인 사교육비 절감이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수능 대비에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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